[신성대의 시화 에세이] (12) 따뜻한 팥죽 한 그릇
[신성대의 시화 에세이] (12) 따뜻한 팥죽 한 그릇
  • 신성대 칼럼니스트/작가
    신성대 칼럼니스트/작가
  • 승인 2018.03.01 1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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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추운 겨울날 노숙자들이 모여 있는

을지로역과 종각역 지하도로 교회에서 대학청년들과

따끈한 팥죽과 미리 준비한 침낭을 들고 나갔습니다

영하의 추운 날씨임에도 입구 계단 내려가는 곳과 지하도 복도 양쪽으로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바람을 피해 사람들이 누워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널 부러진 신문지와 종이 박스가

그들에겐 유일한 잠자리와 이불의 전부였습니다.

한 사람 한사람 그들을 살피며 침낭이 있나 없나를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잠을 자지 않고 모여 있는 노숙자 몇 분들이

‘누구는 침낭을 주도 되고 누구는 주면 안 된다’며

마치 그곳의 관리자처럼 사람들을 판단하며 지정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괜히 처음 자러 온 사람들 침낭 줘봐야

다음날 남대문에 팔아 술 먹을 테니까 주지 말라’는

친절한 조언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알아서 추운사람들 줄 테니까 침낭을 맡기라는

말까지하며 마치 그곳의 관리인들처럼 행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그럴수록 그분들의 진정성이 의심되었고

그런 마음이 들자 그때부터 사람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밤새 추위를 느껴본 사람은 그 침낭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 겨울 자신을 추위로부터 보호하고 지킬 목숨 줄 같은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당장 이불이 없거나 종이박스나 신문지에 의지해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침낭이나 이불 없는 분들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확인하며

그분들에게 침낭을 나눠 주기 시작 했습니다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기뻐했고, 그중에는 ‘처음 침낭을 받았다’며 너무 감사하다고

정말 따뜻하게 잠을 잘 수 있겠다고 정말 고맙다며

진심담긴 손을 힘있게 잡아주는 분도 계셨습니다.

 

이렇게 침낭을 거의 다 나눠 줄 무렵 이었습니다

지하도 기둥 옆에서 얇은 담요 두 장을 덮은 것이 

이불의 전부인 한 분이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처음에는 돌아누워 주무시는 모습이 긴 머리의 여자 분인 줄 알았으나

자세히 보니 남자분이였고 머리가 길어 그냥 묶은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심히 흔들어 인기척을 냈습니다

"저 아저씨 날도 추운데 침낭하나 드릴게요."

그러자 그는 이불을 젖히고 나를 슬그머니 나를 보더니

 "저는 괜찮습니다 더 춥게 자는 다른 분 주세요."라는 것입니다.

 처음엔 내가 잘 못 들었나 싶어재차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대답은 똑 같았습니다

그말을 듣자 멍하니 다른 말이 안나왔습니다.

그날은 차가운 바람이 온 지하도를 냉기로 가득 찰 만큼 추운 날이었는데

그런 날에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자신보다 더 추운 사람에게 나눠주라’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짠하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잠을 청하는 그분에게 따뜻한 죽이라도

드리고 싶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습니다

"저 아저씨 그러면 저희가 팥죽을 좀 가지고 왔는데

출출하실 텐데 이거라도 좀 드시겠습니까?"말하자

그는 내 말을 듣자 마치 스프링처럼 튕기듯 벌떡 일어났습니다

어쩌면 그는 추위보다는 배가 더 많이 고팠던 모양이었습니다.

 팥죽을 보자마자 연신 고맙다는 인사말과 함께 팥죽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남은 팥죽을 한 그릇 더 드셨습니다. 침낭을 끝까지 사양하는 바람에 드리지 못했지만

그분에게 “제가 아저씨를 위해 기도를 한번 해드려도 될까요?”라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내가 그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해주었을 때 그는 가만히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였고 기도를 마치자 ‘아멘’하며 화답을 해 주었습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운데 같은 처지의 삶을 생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기꺼이 그런 마음을 품는 다는 것은 대단한 마음입니다

기도를 마치고 인사를 건네며 힘차게 악수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에

별스런 아저씨의 환한 그 얼굴이 계속 아련거렸습니다

정말 추위를 많이 타는 “나라면 어땠을까?”하는 마음이 들면서

비록 팥죽 한 그릇이었지만 그 팥죽만큼 같은 처지를 배려하는

한 노숙인 아저씨의 따뜻한 그 마음이 내 마음을 더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

침낭까지는 못 드렸지만 그래도 맛나게 드신 따뜻하고 든든한 팥죽 한 그릇이

그 분이 견뎌낼 긴긴 밤을 조금이나마 든든하게 만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필자소개 

신성대  작가/ 칼럼니스트 

저서 : '별을따라가는 것과 산을 오르는 것' 

       '땅끝에서 피는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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